제목 | 쳇GPT와 웹소설 쓰기 독서리뷰 |
---|---|
작성자 | Clara |
작성일 | 25-03-09 00:04 |
회사명 | |
이메일 | aaa@naver.com |
연락처 |
본문
gpt를 소설쓰기 이용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발상은 꽤나 참신했지만 웹소설을 쓰는 이유나 소설 자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언어에 대한 관점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일단 웹소설을 부업(?) 개념으로 잡은 것 부터 좀 불편했다. 대한민국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 즉 글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전문 작가가 얼마나 되겠느냐만은(몇몇 소설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시작부터 부업으로 접근하는 건 글쓰기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며 생계를 꾸려가는 삶을 꿈꾸는 작가들의 경우 그것이 최종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여러 부업들을 하면서 처절하게 글을 쓴다. 언젠가는 글만 쓰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 또한 비슷한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소설쓰기 그런 글쓰기에 대한 가벼운 태도가 불편했다. 월급이 적으니 부업을 통해서 돈을 더 벌고, 더 나아가서는 경제적 자유(도대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는 단어)를 얻겠다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돈 없으면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니 돈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글쓰기마저 그 부업의 대상이 된다는 게 좀 싫었던 거 같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니 소설에 대한 이해나 깊이 또한 얕을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플롯만 잘 버무려서 쓰면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와 사람들이 이런 걸 진짜 좋아해?’하는 의심과 ‘그래 세상은 원래 그랬지.’하는 체념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반성할 소설쓰기 수 있어서 꼭 작가를 나쁘게만 보고 싶진 않다. 나 또한 유튜브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트렌드를 따라가고, 어떻게 하면 자극적으로 시청자들을 끌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만 했던 게 사실이니까. 물론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하겠지만 그냥 묵묵히 자기 얘기를 하고, 자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하고(대게 진지하니까 재미가 없고 어려움) 가벼운 시청자, 가벼운 독자들(사실상 대부분)을 타겟으로 자극적이면서 가볍게 찍어내는 그런 것들이 잘 팔리는 현실이 그냥 안타깝고 싫다(어쩌면 내 열등감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나온 것일지도……)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기성세대가 된 것만 같네ㅎㅎㅎ개인적인 못마땅함은 일단 내려두고, 웹소설 쓰기를 전략적, 구조적으로 접근 한 부분은 꽤 똑똑하다고 인정할 소설쓰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클리셰 부분이었는데, 클리셰는 보통 진부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야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작가는 오히려 반대로 클리셰를 적극 이용할 것을 권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라이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쓸 거라면 클리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클리를 보고 진부하다고 여기고 책을 덮을 사람은 독서 경험이 꽤 많고 깊은 사람일 것인데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웹소설을 보지 않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적어서 무시해도 될 테니까. 가볍게 쓱쓱 읽고 넘어갈 사람들에게 클리셰는 오히려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게 아니고 킬링 타임용으로 보는 것이니 익숙한 게 나오는 게 소설쓰기 빨리 읽으면서 넘어가기도 편하고 쓸데없이 사유할 필요도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 좋다. 그리고 또 라이트하게 읽는 사람들은 그게 클리셰인지 아닌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것이 클리라는 것을 알고 클리를 발견할 수 있으려면 그동안 많은 경험이 쌓여있어야만 한다. 여러 번 봤으니까 그게 지겹고 진부하게 느껴져서 싫은 거지 애초에 그런 경험이 쌓여있지 않은 독자에겐 오히려 클리셰는 재미를 보장한다. 왜 많은 소설에서, 영화에서 그런 표현을 썼을까? 그게 효과가 좋으니까, 소위 잘 먹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클리셰는 웹소설 작가에겐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재미까지 주는 소중한 녀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클리셰를 적극 소설쓰기 사용하라고 전략적으로 웹소설 작법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꽤나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안 좋은 말만 쓴 것 같은데 내용이 부실했다기보다 근본적인 태도, 관점에서 많이 실망했기 때문인 거 같다. 소설에 대한 관점, 문장, 더 나아가서는 문장에 대한 관점이 너무나 순진하달까. 쉽게 생각한달까? 문장 하나를 만드는 것은 세계의 한 장면을 창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사태도 어떤 문장으로 묘사하느냐에 따라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적당히 글을 쓸 수만 있으면 부가적인 재능 없이도 웹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은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또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소설쓰기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려고 문장 하나 하나 정성 들여 창작하는데, 그냥 무미건조하게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의 문장을 구사하는 gpt에게 서술을 맡긴다니. 나는 작가도 아니지만 화가 났다. 작가들이 이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모욕적이었을지. 그래도 꽤나 체계적인 접근이라서 보고 따라하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 사람 자체가 야무진 것 같긴 했다. 기존의 창작론이나 작법들이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에 대한 반성으로 이렇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제시한 것 같은데 의미는 있다고 본다. 정말 웹소설로 용돈좀 벌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꽤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왜 기존의 작가들이 그렇게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얘기했을지 잘 한 번 소설쓰기 생각해봐야한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그 작법대로 글을 썼다고 치자. 그럼 그 글은 과연 누구의 글이라고 해야할까? 운이 좋게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면 이 작가의 머릿속은 이 질문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내 방식대로 글을 썼어도 사람들이 똑같이 이렇게 좋아해줬을까?'그래서 시론이나 소설론은 상대성 이론처럼 무슨 하나의 법칙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있다고 해도 김소월의 시론, 김수영의 시론이 있을 뿐이지. 작가라면 남을 흉내 내서 쓰는 게 아니고 자기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니까. 부처의 말처럼 정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는 게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생각해 소설쓰기 본다.